
팰리세이드 사전계약은 현대차 관계자 덕분? 진짜 많이 팔릴까?
[전승용의 팩트체크] 현대차 팰리세이드가 연일 자동차 뉴스 지면을 가득 채웁니다. 현대차가 오랜만에 내놓은 대형 SUV다 보니 기대 이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듯합니다. 최근 SUV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더 크고 비싼 모델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는데, 팰리세이드가 이 틈을 잘 파고들었습니다.
팰리세이드의 놀라운 점은 사전계약 대수입니다. 첫날 3468대를 시작으로 불과 9일(이하 영업일 기준) 만에 2만대를 넘겼습니다. 국내 대형 SUV 시장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믿기 어려운 숫자네요. 당연히 이와 관련해 기사가 쏟아졌고, 더 당연히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습니다.

일단, 아슬란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아무리 현대차가 출시 초기 언론 플레이를 잘한다고 해도, 댓글처럼 아슬란이 돌풍을 일으키고 매일 도배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대차가 시장 분석을 잘못하고 내놓은 모델이라는 부정적 기사가 훨씬 더 많았죠. 사전계약도 18일 동안 2200대에 머무는 등 실패가 예견된 그런 차였습니다.
다시 팰리세이드로 넘어가겠습니다. ‘협력사 사장, 대리점 점주, 전시차, 영업사원들이 많이 샀겠지’란 댓글이 눈에 띄네요. 현대차에서 일했다는 한 독자는 ‘영업사원들이 출고를 앞당기기 위해 미리 가계약을 잡아서 사전계약이 많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네요. 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당장 이 댓글의 진위 여부를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팩트체크는 팰리세이드의 판매 추이를 최소 6개월 이상 지켜봐야 논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만약 사전계약에 허수가 많다면 팰리세이드 실적은 순식간에 떨어질게 뻔하니까요.
그래도 팰리세이드의 사전계약 대수는 상당히 현실성이 있어 보입니다. ‘9일 2만대’는 일반 소비자들의 도움 없이, 현대차 관계자의 힘만으로는 달성하기 불가능한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1000만 넘긴 영화의 평점을 특정 세력이 바꿀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현대차에서도 사전계약을 높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겠지만, 이런 노력만으로 2만대를 넘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일단, 사전계약 대수에 전시차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현대차에 문의해보니 ‘순수 소비자’의 계약만 집계된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현재 전국에 깔린 현대차 영업점은 818개에 불과합니다. 2만대에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는 숫자죠. 10대씩 전시해도 8200대네요.
전시차를 제외하고 협력사 사장이나 대리점 점주, 영업사원들이 사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역시 전체 계약 대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에는 팰리세이드 말고도 많은 모델이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의 주장대로라면 사야 할 차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죠. 뭐, 제가 지금 현대차 입장이라면 잘 나가는 팰리세이드가 아니라 팰리세이드에 가려 빛을 못 보고 있는 제네시스 G90을 사도록 유도할 것 같습니다.

영업사원의 가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의 수요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잡을 수 있는 가계약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댓글에 쓰인 것처럼 가계약도 무리해서 팔기보다는 소비자에게 빨리 넘기기 위해서라면, 사전계약 대수는 허수가 아니라는 방증이 되는 셈입니다.
일반적인 수입차와 달리 한 소비자가 여러 영업점에 복수 계약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전국 영업점은 사전계약과 관련해 공통 프로그램을 쓰는데, 같은 소비자 정보는 아예 입력이 안 된다고 합니다. 한 번 계약을 맺은 소비자가 다른 영업점에서 또 다른 계약을 맺을 수 없다는 겁니다.
팰리세이드의 사전계약 추이를 살펴보면 심증은 더 굳어집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싼타페와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올해 초 나온 신형 싼타페는 8193대를 시작으로 9일 동안 3만대가 계약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첫날 사전계약이 가장 많이 몰리고, 그 이후 눈에 띄게 떨어지는데요. 9일 동안의 계약 대수 중 첫날 비중을 살펴보면 팰리세이드는 17%로, 27%인 싼타페보다 훨씬 낮습니다. 싼타페보다 더 꾸준히 계약이 이뤄졌다는 것이죠. 아직까지도 계약이 끊이지 않아 3만대를 넘겼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네요.

그렇다고 팰리세이드가 싼타페만큼 많이 팔릴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지금이야 오랜만에 나온 국산 대형 SUV에 열광하고 있지만, 생산 물량 및 시장 규모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싼타페와의 간섭도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일단, 현대차가 계획한 팰리세이드의 판매 목표는 연간 4만대입니다. 현재 울산 4공장에서 월 4000대씩 생산되고 있는데요. 4만8000대 중 4만대는 내수, 나머지 8000대는 수출 물량으로 잡은 듯합니다. 물론 예상을 훌쩍 넘어선 팰리세이드 인기에 현대차 내부에서도 증설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무턱대고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내 대형 SUV 시장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입니다. 팰리세이드가 없던 시절은 쌍용차 G4 렉스턴과 기아차 모하비, 포드 익스플로러, 혼다 파일럿 등이 연간 4만대가량 팔던 곳입니다. 팰리세이드가 나와 잠깐 시장을 키우더라도 유지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대형 SUV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어렵죠. 살 사람은 다 사버리면 판매량이 뚝 떨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국내 자동차 시장은 연간 180만대 수준입니다. 현대차가 팰리세이드 시장을 키우려면 결국 싼타페 시장을 뺏어와야 합니다. 또, 팰리세이드의 성공을 본 기아차가 계획에 없던 텔루라이드를 출시할 수도 있습니다.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는 겁니다.

사전계약을 핑계로 이래저래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어쨌든 팰리세이드는 여러모로 기대가 되는 그런 모델입니다. 최근 이렇게 화제를 모으며 소비자들을 열광시킨 신차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팰리세이드가 지금의 기세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함께 지켜보면 좋을 듯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전승용
전승용 칼럼니스트 : 모터스포츠 영상 PD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담갔으나, 반강제적인 기자 전업 후 <탑라이더>와 <모터그래프> 창간 멤버로 활동하며 몸까지 푹 들어가 버렸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