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2015년 9월 디젤 게이트가 터졌다. 신뢰할 만한 기업이라 여겼던 독일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자 얄팍한 속임수를 쓰다 미국에서 걸린 것이다. 그 파장은 컸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참 많은 글을 썼다. 대충 계산해도 40여 편 정도는 될 거 같다.
올해만 해도 다음 자동차 칼럼 코너에 디젤과 배출가스에 관한 글을 15개나 올렸으니, 이제는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차를 바꿀 예정인 아내는 디젤차는 더는 사지 않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 독일의 전반적 분위기 역시 아내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다.

◆ 유럽에서 디젤의 급격한 몰락
디젤차는 3년 사이 너무 많은 변화를 겪었다. 게이트 관련 갖가지 소송과 조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련 인물 일부는 이미 감옥에 들어갔으며, 폭스바겐을 포함 몇 제조사는 벌금을 조 단위로 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 제조사들이 지원해 만든 한 단체가 디젤 질소산화물 유해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원숭이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벌인 것이 드러나 다시 한번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또한 독일 완성차 업체들의 담합 논란은 자국 자동차 기업에 대한 독일인들의 자부심을 부끄러움으로 바꿔 놓았다.
디젤에 대한 반격이 시작됐다. EU는 물론 유럽 국가별, 또 지자체별로 디젤차에 대한 억제 정책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디젤을 밀어내기 위한 소송이 곳곳에서 진행 중이고, 일부 유럽 국가는 아예 내연기관 자동차 자체를 팔지 못하게 할 장기 계획까지 수립했다. 독일은 노후 디젤차의 도심 진입 금지 판결이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으며, 영국도 디젤 세금 인상과 디젤차가 도시에서 주차할 때 더 비싼 요금을 내도록 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최근 폭스바겐마저 2026년 이후에는 새로운 엔진을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2040년쯤에는 엔진 달린 폭스바겐 자동차를 더는 살 수 없게 된다. 유럽의 요즘 분위기에서 내연기관 운명은 길어 봐야 30년 정도로 보인다. 그리고 그 제한된 운명 속에서 디젤의 추락은 더 빠르게 진행됐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자료에 따르면 디젤이 활성화된 서유럽 15개국의 2016년 디젤 신차 점유율은 49.9%였다. 2017년에는 44.8%로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 EU 전체 디젤 신차의 점유율은 37%까지 떨어졌다. 이런 속도라면 내년에는 30%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유럽의 자동차 제조사는 디젤 자동차를 당장 포기할 수는 없다. 전기차나 수소전기차 등, 대안 세력이 인프라 부족과 비싼 가격 등으로 인해 성장이 더디기 때문이다. 디젤 수요의 대부분을 흡수한 것은 가솔린 자동차였고, 이것은 CO2 배출량을 늘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여러 자동차 제조사가 2021년까지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을 95g/km로 맞춰야 하는데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지키지 못했을 때의 천문학적 벌금은 제조가 직면한 가장 큰 두려움이라 할 수 있다.
◆ 연결고리의 역할을 해야 하는 디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솔린 자동차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디젤차가 전기차 등,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기 전까지, 어쨌든 버텨줘야만 한다. 누구보다 급한 자동차 업계는 여러 방법으로 디젤차의 가장 큰 문제인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투자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들의 디젤은 안심하라며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지우려 애쓴다.
실제로 많은 완성차 업체가 최근 새로운 배출가스 테스트인 RDE(실제 도로 주행 테스트)를 통해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크게 낮췄다. 2021년부터 적용될 기준치 120mg/km도 거뜬하게 통과하는 모델들이 벌써 많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이 RDE 기준치가 너무 관용적이라며 더 강화하라는 유럽 법원의 놀라운 판결이 있었지만 실험실 기준인 80mg/km조차 통과하고 있다.

◆ 요즘 디젤차 질소산화물 실제 배출량은?
그렇다면 요즘 디젤 자동차의 질소산화물 배출 수준은 정확히 어느 정도일까? 기준치(180mg/km)의 6~8배까지 질소산화물을 뿜어냈던 유로 5, 여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유로 6b와 불안감이 남아 있는 유로 6c를 지나 유럽은 현재 6d-TEMP 단계에 와 있고, 내년에는 우리나라와 유럽 모두 유로 6d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문제는 실제로 이런 단계를 거치며 디젤차가 정말 깨끗해졌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궁금증을 잘 확인시켜주는 데이터 하나가 독일에 있다. 자동차 클럽인 아데아체는 2016년부터 자체 에코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계측기를 달고 도로를 달리며 여러 자동차의 배출가스를 확인해 공개한다. 오히려 유럽의 공인 테스트보다 더 조건을 가혹하게 설정했다. 테스트 결과는 유로 6d-TEMP에 해당하는 디젤차가 얼마나 질소산화물 문제를 해결했는지 확인시켜 줬다.
<유로 6b (구연비 측정 방식 적용)>
▪ 르노 그랑 세닉 dCi 160 디젤
질소산화물(NOx) : 896mg/km
입자상물질(PM) : 0.7mg/km
▪ 현대 i40 왜건 1.7 CRDi DCT 디젤
질소산화물(NOx) : 313mg/km
입자상물질(PM) : 0.3mg/km
▪ 아우디 Q5 2.0 TDI 콰트로 S트로닉 디젤
질소산화물(NOx) : 131mg/km
입자상물질(PM) : 0.3mg/km
▪ 폭스바겐 아테온 2.0 TDI SCR 4모션 디젤
질소산화물(NOx) : 87mg/km
입자상물질(PM) : 0.4mg/km
유로 6b는 2015년 9월 1일 이후부터 2018년 8월 31일 사이에 출시된 기존에 형식 승인을 받은 자동차가 해당한다. 독일의 환경단체와 일부 지자체는 이 유로 6b 디젤 자동차까지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에 따라 통행금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모델을 제외하면 많은 유로 6b 디젤차들조차 질소산화물을 과다 배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다면 도로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유로 6d-TEMP에 해당하는 모델은 실제 어떨까?
<유로 6d-TEMP (신연비 측정법 & 도로 주행 테스트 적용 모델)>
▪ 푸조 508 2.0 블루 HDi 160 디젤
질소산화물(NOx) : 19mg/km
입자상물질(PM) : 0.1mg/km
▪ 푸조 508 1.6 퓨어 테크 알뤼르 180 가솔린
질소산화물(NOx) : 33mg/km
입자상물질(PM) : 0.3mg/km
최근에 출시된 푸조 중형급 세단 508의 경우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디젤 엔진보다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모델에서 더 많이 배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둘 다 유로 6d-TEMP에 해당하며, 도로 테스트 기준인 168mg/km보다 한참 낮은, 심지어 실험실 기준인 80mg/km보다도 더 낮은 결과를 보였다.

함께 표시한 입자상물질의 경우 흔히 말하는 직접 배출되는 미세먼지를 뜻한다. 시커멓게 배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PM을 질소산화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질소산화물은 약한 적갈색의 기체로 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고, 과하게 질소산화물에 노출되면 목이 아프거나 눈이 따끔거리는 증상을 느끼게 된다. 다른 결과를 조금 더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 시트로엥 DS 7 크로스백 디젤 (유로 6d-TEMP)
질소산화물 : 98mg/km
입자상물질 : 0.2mg/km
▪ 볼보 V60 D3 디젤 (유로 6d-TEMP)
질소산화물 : 40mg/km
입자상물질 : 0.4mg/km
▪ 볼보 V60 D4 디젤 (유로 6d-TEMP)
질소산화물 : 91mg/km
입자상물질 : 0.2mg/km
▪ BMW X2 xDrive 20d 디젤 (유로 6d-TEMP)
질소산화물 : 31mg/km
입자상물질 : 0.2mg/km
▪ 메르세데스 C 220d 9 G트로닉 디젤 (유로 6d-TEMP)
질소산화물 : 13mg/km
입자상물질 : 0.8mg/km
유로 6d-TEMP에 해당하는 많은 모델이 매우 낮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하고 있다. DPF 덕분에 시커먼 입자상 물질 제어도 잘되고 있었다. 독일 전문지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가 밝힌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메르세데스 CLS 350 디젤 모델은 질소산화물을 19mg/km, 아우디 A7 50 TDI의 경우 52mg/km를 배출했다.
모두 안정권이다. 그 외에 조작 프로그램 의혹을 독일 정부로부터 계속 받고 있는 오펠의 경우 그랜드랜드 X라는 신형 SUV가 아데아체 테스트를 통해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34mg/km 배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칼럼에서 소개되지 않은 더 많은 유로 6d-TEMP에 해당하는 디젤차들 역시 결과 대체로 실험실 기준인 80mg/km 이하의 결과를 보였고, 일부는 가솔린 차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좋은 결과도 보였다. 디젤차가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 디젤의 변화와 가능성 지켜봐야
반디젤 분위기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마치 디젤을 옹호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3년 넘게 디젤의 변화 과정을 좇고 기록하며 디젤의 한계와 동시에 디젤의 개선점과 가능성도 목격했다. 분명 과거의 디젤은 솔직하지 않았다. 인체에 해로운 질소산화물이 너무 많이 배출됐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디젤은 앞서 본 것처럼 더 나아지고 있다. 제도가 디젤을 변화시켰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디젤차 만드는 이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배터리 전기차와 수소 전기차 등이 더 활성화되고 시장을 주도하는 그런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가슴 아픈 상상이기는 하지만 내연기관의 시대가 종말을 맞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어쨌든 더 깨끗한 디젤차, 더 깨끗한 가솔린 자동차가 될 수 있도록 냉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야 한다.
새로운 가능성이 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이 실현되도록 우리는 현명한 소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자동차 시장을 건강하게 이끌어 가야 한다. 이게 자동차를 소비하고,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가는 이 시대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