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오프로드 성능, 필수일까 잉여일까?

“대부분 쓰지 않지만 SUV의 기본기라는 이유로 오프로드 기능은 상당수 SUV에 들어간다. 불필요한 기능을 굳이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임유신의 업 앤 다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자동차 살 때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다. 기능이나 옵션을 놓고 이런 고민 해보지 않은 사람 없을 줄로 안다. 1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한 기능이지만 왠지 없으면 불안하다. 대부분 이왕 큰돈 주고 사는데 혹시 모르니 기능을 넣자는 쪽으로 결론 낸다. 자동차 구매는 과시욕도 꽤 작용한다. 똑같은 차를 사도 남보다 기능 하나 더 많은 위급으로 사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쓸데없는 기능이 가득 담겼더라도 풀옵션으로 사야 마음이 든든하다.

업체들도 불필요한 기능을 넣는 데 앞장선다. 기술력을 앞세워 차별화하기 위해 경쟁차에 없는 기능을 넣는다. 특정 기술이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 불필요하더라도 빼기가 힘들다. 경쟁차보다 못하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남들 넣는 기능은 필요 없더라도 갖춰야 한다. 가격 올리는 명분을 얻는 데도 유리하다. 소수의 요구라도 놓치지 않는다는 좋은 의도를 내세우지만 핑계인 경우도 많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경쟁이 일어나는 제품 분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기능이 없으면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고, 넣으면 오버 스펙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인업을 세분화하거나 옵션을 다양하게 준비해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 쉽지 않다. 가격 변수까지 더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애플 아이폰 사용자 사이에는 3D 터치를 두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3D 터치는 화면을 꾹 눌러 추가 기능을 사용하는 기술이다. 6S 모델부터 등장했는데 최근 XR 모델에 이 기능이 빠졌다. XR 살 때 이 기능이 없어서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원래 활용도가 떨어져서 없어도 그만이라는 반응도 상당하다.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상위 기종인 XS나 XS 맥스에도 이 기능을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능을 빼고 가격을 낮추라고 요구한다. 차세대 모델에 다 빠진다는 소문도 있지만, 아이폰의 상징적인 기술이라서 애플이 빼지는 않을 거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자동차는 기술의 복합체인 만큼 필요 불필요 논란이 많이 일어난다. 그중에서도 특정 브랜드만 아니라 자동차시장 전반에 걸쳐 논란이 되는 부분이 SUV의 오프로드 성능이다. 요즘 시대에 굳이 필요 없는데 꼭 기능을 넣어야 하는가 하는 목소리가 크다. SUV가 인기를 끌면서 더욱더 생각해 볼 문제로 떠올랐다.

SUV는 태생이 험로를 달리기 위해 만들었다. 아스팔트보다는 산길이나 비포장도로 등에 특화한, 목적이 분명한 특수 분야 자동차다. 그런데 SUV를 승용 목적으로 타기 시작하면서 오프로드 성능은 점차 불필요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도심형을 내세우며 오프로드 성능을 뺀 SUV도 많이 나왔다. 형태만 SUV일 뿐 세단과 별반 다를 바 없는 SUV들이다. ‘태어나서 폐차하기 전까지 타이어에 흙 한번 묻히지 않는 SUV가 대부분이다’, ‘SUV 소유자 중 90% 이상은 차를 보유하는 기간 오프로드를 한 번도 가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즘 시대 SUV는 일반 자동차로 취급받는다.



최근 몇 년간 SUV가 급성장하면서 SUV의 일반화는 더 심화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오프로드 성능을 강조하는 SUV들이 많다. 설령 구매자들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경쟁차와 차별화할 수 있는 기능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강조한다.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 요즘 SUV는 도심을 달리는 차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프로드 성능이 우수한 차는 진정한 SUV라고 인정받는다. 원래 험한 곳을 달리는 차라는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프로드 관련 기능을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구매자도 있지만, 갖춘다고 해서 좋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인식 때문에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오프로드 기능을 기본으로 갖추는 차들이 많다.



SUV를 세단처럼 타는 이때, 오프로드 특성을 빼버리면 어떨까? 물론 오프로드 기능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오프로드를 전문적으로 즐기거나 지형이 험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필수다. 그러나 이들 비중이 매우 낮다면 이런 사람들만을 위한 특수 기능으로 남겨 놓고, 기본은 오프로드 특성을 제거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오프로드 특성을 빼 버리면 차 값도 낮아지기 때문에 구매자도 유리하다. 아주 험한 지형이 아닌 이상, 일반인들이 아웃도어 활동 때 마주치는 비포장도로 등은 세단 같은 승용차로도 갈 수 있다. SUV는 차고가 높기 때문에 오프로드 특성이 빠지더라도, 세단 같은 차보다 험한 길로 다니기에 유리하다.



굳이 기술을 개발해서 넣겠다는데, 불필요하더라도 혹시 모르니 갖추겠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10명 중 9명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필요성에 대한 고민은 더 진지하게 해야 한다고 본다. SUV 시장은 계속해서 커질 전망이다. 차종이 늘어나고 수요가 다양해지면 특성 또한 변한다. 대부분 쓰지 않는 기능이라면 잉여가 맞다.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기능이라면 SUV의 원래 특성에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다.

자동차시장은 급속하게 변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자동차 엔진의 절반을 차지하는 디젤이 어느 순간 퇴출해야 할 존재로 낙인찍히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는가. 효율성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로 여기던 수동변속기도 멸종 위기다. SUV의 오프로드 특성 또한 거의 쓰지 않지만, 기본기라는 이유로 상당수 SUV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필요하다는 인식이 그나마 어느 정도 남아 있지만, SUV 시장이 더 커지면 없어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굳어 버릴지도 모른다. 잉여의 입지는 언젠가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경쟁 요소라는 족쇄에 매여 굳이 기능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정통 오프로더가 아닌 SUV라면 오프로드 특성을 과감하게 덜어내는 시도를 해야 할 때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탑기어> 한국판 편집장)

임유신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모터 트렌드>, 등을 거쳤다. 현재 글로벌 NO.1 자동차 전문지 영국 BBC <탑기어>의 한국판 편집장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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