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증 끝난 폭스바겐 티록, 한국 땅 밟을 수 있나?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갈수록 작은 SUV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랜 세월 해치백이 시장을 주도한 유럽만 하더라도 이제는 지상고 높은 소형 크로스오버 모델들이 존재감을 키우며 시장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들 중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르노 캡처(한국 수출명 QM3)다.
캡처는 지난해 EU에서 총 21만1,092대가 팔렸는데 B세그먼트 SUV 중 연간 판매량이 유일하게 20만 대를 넘겼다. 2위 역시 르노 산하 저가 브랜드 다치아의 더스터로 18만 대를 넘기며 푸조 2008을 따돌렸다. 캡처와 더스터 모두 성능보다는 경제성에 초점을 맞춘 모델들이다. 특히 더스터는 저렴한 편이라는 캡처보다도 5천 유로가량 더 싼 가격을 무기로 빠르게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2018년 EU 소형 SUV 판매 TOP 5>
1위 : 르노 캡처 (211,092대)
2위 : 다치아 더스터 (180,391대)
3위 : 푸조 2008 (177,486대)
4위 : 폭스바겐 티록 (139,755대)
5위 : 토요타 C-HR (131,348대)
상위 5개 소형 SUV 중 눈에 띄는 것은 토요타 C-HR과 폭스바겐 티록이다. C-HR은 2017년부터 유럽에서 경쟁 중인데 소리소문 없이 13만 대 이상 팔려나갔다. 참고로 현대 코나는 같은 기간 65,469대, 기아 스토닉은 54,816대, 그리고 기아 니로는 44,225대가 팔렸다. 하지만 역시 티록의 상승세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다양하게
2017년 11월부터 판매가 시작됐으니 2018년이 본격 경쟁을 펼친 실질적 첫해라 할 수 있는데 1년 만에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 분위기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1월 독일에서 4,651대가 팔려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무려 243.2%가 상승한 결과다.
티록은 영리한 전략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유럽에서 연간 판매량이 10만 대를 넘기는 소형 SUV는 100마력에서 130마력 전후의 엔진이 들어가는, 경제성 있는 모델이 대부분이다. 티록은 115마력, 150마력, 그리고 190마력짜리 가솔린 엔진이, 그리고 디젤의 경우 115마력과 150마력 두 가지 엔진이 장착된다.

150마력 이상 엔진이 들어가는 소형 SUV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현대 코나가 177마력, 닛산 주크가 214마력, 미니 컨트리맨에 224마력, 그리고 같은 플랫폼을 통해 나온 아우디 Q2의 190마력 정도다. 하지만 판매량에서 모두 티록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전장 기준으로 차체도 작지 않다. 티볼리와 비교해 30mm 더 길고 동급 중 전폭은 두 번째로 넓다.
그런데 티록은 여기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 며칠 후 제네바모터쇼를 통해 티록 R 모델이 공개된다. 현재 얘기되는 것을 보면 골프 R에 들어간 2리터 290마력짜리 엔진이 들어갈 것 같다. 양산된다면 이보다 더 높은 출력을 보이는 소형 SUV는 없다. 그뿐 아니라 내년에는 컨버터블 모델도 내놓을 모양이다.
강력한 성능, 대중성, 거기에 공기를 맞으며 와인딩을 즐길 수 있는 컨버터블의 맛까지, 유럽 운전자들의 마음을 뺏기에 충분한 구성이다. 영국과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들 평가도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울 듯하다. 영국 오토카는 별 5개 만점 중 4.5개를 줬다. 닛산 캐시카이, BMW X1, 르노 카자르, 토요타 C-HR 등을 따돌리고 크로스오버 해치백 1위로 꼽았다.

◆ 전문지들로부터 호평
평점이 짠 편인 영국 왓카도 별 4개를 줬다. 코나(별 3개), 푸조 2008(별 2개), 르노 캡처 (별 3개)보다 높다. 독일에서는 사륜 디젤보다 앞바퀴 굴림의 150마력짜리 가솔린 모델에 대한 평가가 더 좋았다. 대체로 승하차의 편안함과 단단한 하체, 강력한 엔진, 그리고 풍부하게 적용 가능한 옵션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조립 완성도는 높지만 역시 소재의 고급감이 떨어진다. 연비도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가격이 걸림돌이다. 기본가는 푸조 2008과 큰 차이가 없지만 기본 사양이 상대적으로 적고, 원하는 옵션을 선택했을 때 비용 상승 폭이 크다. 독일 자동차에 대한 모든 소비자의 불만이라 할 수 있다.

◆ 한국 땅 밟을 수 있을까?
가끔 도로 위에서 티록을 보게 되는데 딱히 흠을 찾기 어려운 좋은 스타일을 하고 있다. 단단하고 야무진 느낌의 이 차는 사륜구동과 고마력 엔진도 있고, 곧 컨버터블로도 나오게 된다. 아무리 봐도 티구안의 성공을 이을 또 하나의 폭스바겐표 SUV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쯤 되면 한국 시장 진출 여부가 언론을 통해 전해질 법도 하다. 하지만 도통 소식이 없다.
티록은 크기나 성능 등은 한국 시장에 이미 자리를 잡은 푸조 2008보다 앞서지만 소형 SUV에 기대하는 경제성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반대로 미니 컨트리맨이나 아우디 Q2 등에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고급감이나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 측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비판적으로 보면 수입하기에 모호한 면이 있다. 마진 역시 높지 않을 테니 쥐어짜듯 한국에 이 차를 들여올지 내부적으로 고민이 될 법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푸조 2008과 미니 컨트리맨 사이에서 자신만의 시장을 개척해 나갈 수도 있고, 글로벌 시장의 판매 경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과연 티록은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이제 폭스바겐이 답을 해줄 때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