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다의 독주를 도와준 국산 브랜드
소비자는 선택의 권리가 있어야 한다
[최홍준의 모토톡] 모터사이클, 특히 스쿠터 시장에서 혼다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워낙 뛰어난 품질에 좋은 상품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쟁 모델의 부재도 크게 작용했다. 특히 혼다 PCX125는 125클래스 스쿠터 중에서 압도적인 판매량과 성능을 가지고 있다.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등록대수 기준으로 1만대 이상이 팔렸다. 혼다는 지난해 모두 2만 2천대 이상을 팔았기 때문에 판매량의 절반을 이 125cc 스쿠터가 차지한 것이다.
혼다 PCX와 정면으로 경쟁했던 스쿠터는 야마하의 N맥스125. 지난해 4500대 가량 판매되어 PCX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나마 N맥스였기에 이정도의 판매고를 유지할 수 있었다. 베스파의 125모델 3종이 도합 1500대 가량 판매되었고 SYM과 킴코 등 대만제 스쿠터 브랜드는 이보다는 높았지만 예년에 비해 절반 이상 감소된 판매고를 보였다.
야마하는 지난해 모두 7700대 가량을 판매했다. 이 중 500cc이상 대형 바이크는 2900대. 야마하 역시 N맥스가 총 판매대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야마하와 혼다의 제품력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림과 KR모터스, 즉 국내 브랜드의 부재도 컸다.
대림은 지난해 대형 바이크 판매고는 0이라고 할 수 있었고 2만6000대의 판매고 중 2만대 이상이 배달용으로 쓰이는 시티 시리즈였다. KR모터스 역시도 대형 바이크 600대를 포함해 모두 8800대 가량의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이렇다 할 대표기종 없이 십여 대의 기종이 모여 이룬 수치이다.
단일 기종이 1만대 판매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 보면 그만큼 좋은 제품이었기 때문에 많이 팔렸다고 할 수 있지만 무작정 축하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제품 개발과 홍보, 그리고 영업에 소극적이었던 국산 브랜드의 몰락은 수입 브랜드의 호황으로 작용했다. 자체 개발 상품 없이 중국에서 이미 만들어진 상품들을 들여와 자신들의 라벨을 붙여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스쿠터 시장은 당분간 혼다 그리고 야마하 두 브랜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국산 브랜드의 점유율이 압도적인 시절이 있었다. 안주하던 사이에 시장은 변했고 더 이상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잘 팔리는 상황도 아니다.

혼다 PCX는 가격이 403만원이다. 야마하 M맥스는 395만원. KR모터스의 비버125 스탠다드 타입의 가격은 239만원. 대림 오토바이의 클래식 스쿠터인 LC125의 가격은 229만원이다. 국산 브랜드의 스쿠터 가격이 100만 원 이상 더 저렴하지만 많이 팔리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이제 가격만으로 제품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성능을 지닌, 믿을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과거 저렴한 가격으로 대충 타던 스쿠터 시장은 사라지고 있다. 가격이 저렴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유통과정에서의 불필요한 마진이나 폭리가 아니라는 것을 소비자들도 다 깨우치게 된 것. 과거에 비해 저렴한 모델들의 제품력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잘 팔리는 모델들은 그런 정도의 수준이 아닌 아예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 제품들이기 때문이 100만 원 이상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몇 배가 넘는 판매고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스타일로 비교해 보면 이탈리아 클래식 스쿠터의 원조 베스파의 125 라인은 LX, 프리마베라, 스프린터 등의 3종류가 있다. 조금씩의 특성은 다르지만 이 3개 기종이 합쳐 1500대 이상이 판매되었다. 가격도 국산 클래식 스쿠터에 비해 100~200만 원 이상 비싸다. 많은 브랜드들이 이런 클래식 스타일을 시도했지만 원조인 베스파의 오리지널리티를 넘어설 수 없었다. 베스파가 잘 팔린다고 비슷한 스타일을 만들어서 팔려는 안일한 생각이 오늘날 국산 브랜드의 몰락을 가져왔다.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선택하는데 제품력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이나 브랜드 이미지, 사후관리 등도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만족시켜야 비로써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혼다가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만큼 높은 제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현상이 과연 전체적인 모터사이클 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까?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은 시장 전체의 크기를 줄어들게 할 수도 있다.
2019년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혼다는 스쿠터시장뿐만 아니라 대형 바이크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야마하나 스즈키 등 일본 브랜드의 대형 바이크 점유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이나 BMW같은 브랜드도 대형 바이크 시장에서 연간 2000대 이상의 판매고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결국 줄어들고 있는 것은 국산 브랜드의 점유율인 것이다.

2003년 KR모터스의 전신인 효성기계공업은 코멧650을 만들어내며 국산 대형 모터사이클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2018년 국산 브랜드의 대형 모터사이클 판매대수는 총 600대. 이 초라한 수치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칼럼니스트 최홍준 (<더 모토> 편집장)
최홍준 칼럼니스트 : 모터사이클 전문지 <모터바이크>,<스쿠터앤스타일>에서 수석기자를 지내는 등 14년간 라디오 방송, 라이딩 교육,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했다. <더 모토> 편집장으로 있지만 여전히 바이크를 타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아주 가끔 글을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