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유럽 진출의 키워드는 ‘새로움’이 돼야 한다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현대자동차가 만든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호주 시장에 진출했다. ‘제네시스 스튜디오’라는 전용 체험관도 문을 열었다. G70과 G80을 먼저 판매하고 공개가 얼마 안 남은 SUV 모델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판매보다는 브랜드 알리기에 더 신경을 쓸 예정이다. 그리고 이런 접근법은 또 다른 중요 시장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듯하다.



◆ 제네시스 유럽 진출 연기될 가능성

현대자동차는 2015년 11월 독립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키워나갈 계획을 갖고 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했다. 그리고 2020년 유럽 시장 진출 계획이 있음을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사장의 입을 통해 발표했다. 물론 G80의 경우 제네시스 브랜드가 나오기 전에 유럽 땅을 밟은 바 있다. 공식 론칭이 아니었기에 판매 광고도 없이 조용히 매장에 전시됐고, 2017년 소리 소문없이 G80은 유럽에서 철수했다.

G80으로 한 차례 탐색을 한 현대자동차는 이제 G70과 G80, 그리고 GV80과 GV70 등의 SUV를 이끌고 본격적으로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서게 된다. 호주처럼 체험관을 우선 활용해 브랜드 알리기를 한 후 판매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차례 언론을 통해 이런 계획은 알려졌고 현대차 또한 분주하게 움직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근 그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오토모티브유럽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 조원홍 부사장은 제네시스 유럽 시장 론칭 시기를 2020년으로 못 박지 않았다. 몇 년 후라는 뉘앙스의 대답이 나왔다. 현지 시장 분석가는 더 나아갔다.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유럽 전략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면 진출 자체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라고까지 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 걸까?



◆ 독일차 주도로 만들어진 높은 벽

오토모티브뉴스는 제네시스의 어려움 중 하나로 디젤과 SUV의 부재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보다는 유럽 소비자들이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를 인지하고 과연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점이 더 고민거리라 할 수 있다. 유럽 럭셔리 자동차가 최고라는 그들의 확신을 깰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이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잘 알다시피 유럽은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의 본진이다. 이곳에서 미국이나 일본 등의 고급 브랜드가 흔히 말하는 대박을 터뜨린 경우는 없다. 브랜드가 가진 전통과 기술력 등을 중요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렉서스, 인피니티, 캐딜락 등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진출 10년 만에 인피니티는 결국 높은 벽을 실감한 채 유럽 시장 철수를 결정했으며, 혼다 아큐라는 아예 진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유럽의 높은 벽은 독일 브랜드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그리고 BMW의 시장 장악력은 한마디로 경악할 수준이다. 오토모티브뉴스유럽에 따르면 유럽에서 2018년 독일 프리미엄 3사의 고급 마켓 점유율은 77.6%였다. 그 뒤를 볼보(10.3%)와 랜드로버(4.9%), 재규어와 알파로메오(2.7%), 포르쉐(2.3%) 등이 잇고 있으며 렉서스는 1.5%에 그쳤다.

제네시스 G80이 상대해야 할 E세그먼트 시장만 보면 3사의 지배력은 더 강력하다. 독일의 경우 E클래스, 5시리즈, A6의 점유율이 95%를 전후한다. 성능과 디자인, 전통과 브랜드 가치, 여기에 자국 프리미엄 등이 버무려져 만들어낸 결과다. G70이 경쟁할 D세그먼트 시장 또한 3시리즈와 C클래스, 그리고 A4가 버티고 있다. 유럽 고급차 시장은 독일 브랜드와 나머지와의 싸움이라고 봐야 한다.



◆ ‘감탄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무엇으로 이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오모토티브뉴스유럽과의 인터뷰에서 분석가 펠리페 무뇨스는 테슬라처럼 기술적으로 뭔가 다른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안드레아스 말란 기자 역시 최첨단의 기술(a cutting-edge technology)를 제공할 때까지 유럽 론칭을 연기하는 게 현명한 결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이미 2015년 독일에서도 나왔었다.

당시 독일 일간지 디벨트에는 제네시스를 비롯한 아시아 럭셔리 브랜드의 상황과 전망을 담은 기사 한 편이 올라왔다. 기사에는 디자인의 유사성에 대한 한 교수의 발언이 소개되기도 했다. “하나밖에 없는 ‘스페셜 원’이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유명한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교수 역시 같은 맥락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럽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규어처럼 역사가 깊든가, 아니면 테슬라처럼 기술에서 남과 다른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제네시스에 필요한 것은 감탄할 만한 강력한 무엇(인상)입니다.”

2015년과 2019년 두 기사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제네시스만의 다른 무엇’이 존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 다른 무언가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무장을 하는 것이거나, 혹은 전혀 새로운 컨셉트로 유럽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예로 테슬라를 모두 꼽았다.



◆ 기존에 없던 무언가를 준 테슬라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테슬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유럽 시장에서 자리 잡았다. 일부 조립 품질 문제, 반자율주행 사고 등의 논란이 있었음에도 모델 3를 비롯, 모든 모델이 유럽에서 잘 팔려나갔다. 테슬라는 유럽인들에게 ‘전기차의 애플’로 인식됐고, 이전에 없던 새로움으로 유럽인들의 욕구를 채워냈다.

기존의 유럽 고급 브랜드들은 이런 테슬라 바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늦긴 했지만 속속 전기차를 내놓으며 경쟁 체제를 갖추었다. 테슬라의 고급 전기차 시장 독주도 머지않아 끝이 나겠지만 어쨌든 유럽인들에게 테슬라는 이 분야의 원조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새겼고, 이것으로 자신들의 유럽 시장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게 됐다.

제네시스에게도 이런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기존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을 자신만의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있어야 제네시스를 사야만 하는 명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움이라는 것을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테슬라의 경우 고성능 전기차라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과 경쟁력을 가지고 태어난 브랜드이지만 제네시스는 그렇지 못하다. 기존의 여러 럭셔리 브랜드 집단에 속해, 익숙한 것들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 그렇기에 거기에 새로움을 부여하기란 더욱 어렵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현대차도 제네시스 유럽 상륙을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전을 하겠다면 필요한 것은 시간, 비용, 그리고 과감성이다. 긴 싸움이 될 것이고, 그 싸움에서 버티기 위한 자본력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용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것을 따라가는 게 아닌, 과감한 결단으로 새로움을 발굴하려는 절박한 용기 말이다. 지금 제네시스는 얼마나 간절하고 어떤 새로움으로 무장했는지, 현대차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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