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반값의 후속차, WX-3. 1980년대를 넘어 1990년대로 넘어가던 때, 신생 슈퍼카 벡터 W8은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였다. 새로운 슈퍼카는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특히 본국인 미국에서의 인기는 과열의 조짐마저 보였다. 이질적인 디자인도, 그 속을 채운 미국식 하이테크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투기의 이미지를 차에 투영시킨 와이거의 전략은 주효했다.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도, W8은 땅으로 내려온 전투기 같은 존재로 보였다. 극소수의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가 W8을 타고 다니기 시작하자, W8을 향한 선망의 시선은 더욱 달아오른다.

하지만 이토록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W8의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슈퍼카를 가지고 있던 실수요자층에게도 45만달러(물가 환산 시 약 11억6천만원)나 하는 가격은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 발매 후 2년 동안 팔린 차는 고작 19대, 이중 상당수는 연예인 마케팅을 노린 할인판매로 이루어 낸 결과였다. 매출이 고작 4백만 달러에 이를 동안 누적적자는 2천만 달러가 넘어간다. 상장 시점에서 13달러가 넘던 주가는 60센트까지 추락했다. 주주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지경이 되자, 벡터사는 대책을 내 놓는다. 1993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인 W8의 후속작, Avtech WX-3 컨셉트(이하 AWX-3)는 매출을 높이기 위한 벡터 에어로모티브사의 고심이 담긴 차였다.

AWX-3는 본질적으로는 W8의 마이너체인지에 가까운 차였다. 1970년대에 형상화된 W8의 각진 모습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다듬은 외피는 고가의 카본파이버와 케블라가 대신 저렴한 유리섬유를 썼다. 목표 가격은 20만 달러. W8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은 단순히 패널의 소재변경으로 이루어 낸 것이 아니었다. 목표인 연간 250대의 판매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완성시키는 동시에, 별도의 옵션질로 실 구매가격을 올릴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다. 배기량이 7리터로 늘어난 엔진은 흡기 인테이크를 전면 재설계하고 터보 옵션을 다양화 해 600마력과 800마력, 1200마력의 세 가지로 늘어났다. 고출력의 엔진일수록, 차값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AWX-3는 두 대의 프로토타입 외에는 단 한 대도 양산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이후 벡터사가 겪게 될 일들은 막장 드라마나 다름없었다.
◆ ‘갑툭튀’한 독재자의 아들
AWX-3 발표 직후, 메가테크(MegaTech Limited)라는 이름의 회사가 벡터 에어로모티브사의 적대적 인수에 나선다. 버뮤다의 유명한 조세회피처에 기반을 둔 이 정체불명의 회사 소유주는 토미 수하르토. 수하르토라니, 귀에 익은 이름이지 않은가? 그는 32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했던 무샤라드 수하르토의 아들. 벡터의 갑작스러운 인수는 정교한 사업성 분석 같은 것에 기반한 결정이 아니었다. 그냥 차라면 사족을 못쓰던 독재자의 아들이, 아빠의 비자금을 들고 난입해 저지른 짓이었다. 독재기간 중 40조원(!)을 빼돌렸다는 수하르토 가문인 만큼, 자금력 하나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내친 김에 람보르기니까지 인수해 버린다. 슈퍼카 세계의 정점을 놓고 자웅을 다투던 회사 둘이, 갑작스레 불편한 동거를 시작할 판이었다.

◆ 진흙탕 소송전의 시작
제네바에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회의실로 불려 들어간 와이거는 그 자리에서 CEO에서 해임된 뒤 디자인 책임자로 강등된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회사를 빼앗긴 사장이 이사회 결정에 순순히 응했을 리가 없다. 와이거는 본사의 문을 걸어 잠그고 용역깡패까지 불러들이며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대치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농성을 벌이던 사무실에서 끌려 나온 와이거에게 새 주인은 책임을 종용한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벡터와 람보르기니의 통제권을 모두 손에 넣은 메가테크는 두 회사의 통합작업에 착수한다. 본사가 람보르기니 USA가 위치한 플로리다로 옮겨졌으며, 람보르기니의 통제 하에 AWX-3의 생산준비가 시작된다. 그러나 와이거도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해 놓은 AWX-3의 특허를 이용해 벡터사를 진창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지저분한 소송전 이 이어진 끝에 법원은 와이거의 손을 들어준다. AWX-3이 양산될 길도 막혀 버린다.
이제는 메가테크 쪽이 곤란해질 차례였다. 판매할 차량도, 새로운 차량을 설계할 사람도 없는 벡터사는 그냥 빈껍데기나 다름없었다. 람보르기니에 이 사태를 수습하라는 오더가 떨어진다. 엉겁결에 불똥을 뒤집어쓰게 된 람보르기니였지만, 어쩔 수 있는가? 사장이 까라면 까는 수 밖에.

◆ 혼종(混種)의 출현
람보르기니가 손을 댄 벡터의 새 모델, M12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디아블로에 AWX-3의 껍데기를 뒤집어 씌워 놓은 차나 다름없었다. 개발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라는 압박에 시달린 개발진은 섀시는 물론 엔진과 변속기까지 디아블로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가로엔진방식을 사용한 WX-3와 달리, M12의 원판 디아블로는 기다란 V12 엔진을 세로배치한 차. 여기에 AWX-3의 생김새를 끼워 맞추었으니 차량의 균형미는 산으로 가버렸다. 유리섬유 바디를 그대로 쓴 탓에 디아블로보다 60kg가 무거워진 것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급하게 만들어진 몰드에서 떼어낸 바디패널들은 근본적인 품질문제를 가득 안고 있었다. 유일한 장점은 디아블로보다 5만 달러 저렴하다는 것이었지만, 원판보다 느리고, 못생긴 데다가 카누 껍데기를 뒤집어 쓴 모양새의 차는 여전히 19만 달러나 되는 가격을 과시했다.
M12가 시판되면서 시작된 리뷰는 잔혹했다 대충 만든 듯한 인테리어에 실내로 유입되는 휘발유 냄새에 질려버린 독설가 제레미 클락슨은 품질관리가 “불가리아 발전소” 수준이라며 짜증을 냈고, 오토위크는 이제껏 테스트한 차 중 최악의 차로 M12를 꼽았다. 혹평 일색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메가테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잘난 평론가들이 떠드는 것 따위. 레이스에 나가서 싹 다 이겨주면 그만일 뿐이었다. 벡터는 M12를 가지고 미국의 내구 레이스, IMSA GT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 4번의 레이스, 그리고 파산
벡터의 정통성을 확보해 보겠다며 덤벼든 IMSA GT 챔피언십은 오히려 M12의 이미지를 더욱 실추시킨다. M12는 상위 클래스인 GT2에 등록되었지만, 하위그룹인 GT3에도 추월당하는 추태를 보였으며, 그나마 트러블로 리타이어 하기 일쑤였다. 꼴찌 아니면 리타이어로 4번의 레이스가 진행되던 와중에, 메가테크에서 일방적인 비용 지급 불가 통보가 날아온다. 마르지 않는 샘이라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던 수하르토였지만, 그 즈음에는 오히려 회사의 돈을 빼돌리고 있었다. 때는 금융위기의 한복판, 1997년 말부터 재해처럼 동아시아를 휩쓸고 다니던 경제난은 이미 모국 인도네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뒤였다. 독재자 아빠가 쫓겨나듯 권좌에서 내려오고 난 뒤인 1998년, 시작이 느렸던 그의 내리막길은 대신 무척 가팔랐다.
돈줄이 마른 메가테크는 서둘러 가진 것을 팔아치우기 시작한다. 4천만 달러에 구입한 람보르기니를 거의 세 배에 가까운 값인 1억 1천만 달러에 아우디에 넘긴 것은 요행이었다. 제품도 이미지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벡터를 사갈 회사는 아무데도 없었다.
최소한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증명해야 팔려갈 수라도 있음을 알게 된 벡터사는 마지막 여력을 쥐어짜내며 몸부림친다. 람보르기니와의 관계가 청산되며 수급이 불가능해진 V12엔진 대신, 콜벳의 엔진과 포르쉐의 G50 변속기를 얹고, 디자인을 바꾼 차, SRV8이 모습을 드러낸다. 차를 만드느라 모든 체력을 소진한 탓일까, SRV8가 발표된 지 불과 4일 뒤, 벡터사는 파산한다.

◆ 파산 그 이후.
벡터사의 파멸을 가장 반긴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창조자 와이거였다. 그는 경매에 나온 회사의 자산과 상표권을 헐값에 긁어모은 뒤, 장장 8년을 매달린 끝에 후속 모델 WX8을 발표한다. V10 트윈터보로 2000마력을 넘길 것이라는 환상의 차는 2006년의 목업 차량 전시를 끝으로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성장도 변화도 겪지 못한 차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벡터의 웹사이트는 지금도 접속 가능하지만, 10년째 조악한 CG 몇 장이 전부인 사이트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서글픔이 밀려온다. 한 때 자동차 역사의 전면을 장식했던 브랜드였던 벡터의 불꽃은, 이미 예전에 사그라진 뒤다. 이제 곧 꺼질 것이 뻔한 마지막 불씨를, 우리는 지금 지켜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객원기자로 일했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글로벌 자동차 전문지

